구독신청

'최저임금 1만원'의 역설

경비원·편의점 알바 등 저임금 일자리부터 `싹둑`
대전 아파트선 임금상승 우려 경비원 14명 해고 나서

  • 입력일 : 2017.06.21 18:02   수정일 : 2018.08.08 13:52
◆ 최저임금 1만원의 역설 ◆


"최저임금 1만원이 당장 내년에 실현되는 것도 아닌데 벌써부터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요."

지난주 대전 둔산동 소재 한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벽보가 붙자 아파트 주민들 간 논쟁이 후끈 달아올랐다.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 측이 문재인정부의 '최저임금 1만원 시대' 공약 실현을 앞두고 인건비 급상승을 염려해 고화질 CCTV와 차단기 등 무인경비시스템을 도입하면서 현재 30명인 경비원 중 14명을 해고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입주자대표회의 측은 "연간 인건비 3억원을 절감할 수 있다"며 주민들에게 무인경비시스템 도입 효과를 설명했다.

그러나 일부 아파트 주민이 경비원 해고 방침에 반발하며 벽보를 통해 "최저임금이 내년에 바로 오르는 것도 아니고 1만원까지 오를지는 가봐야 아는 것"이라며 "고단한 업무를 하는 분의 임금을 올려주라고 했더니 (되레) 벼랑 끝으로 몰고 있다"고 비판하고 나섰다. 결국 주민들은 찬반투표를 통해 경비원 해고 여부를 최종 결정하기로 했다.

21일 매일경제가 산업계와 아파트단지·대학가 등 고용 현장을 취재한 결과, 저소득층을 위한 최저임금 상승 논의는 벌써부터 저임금 근로자들 해고라는 '부메랑'이 돼 돌아오고 있었다.

문 대통령은 대선 당시 현재 시간당 6470원인 최저임금을 2020년까지 1만원 수준으로 인상하겠다고 공약했다. 민주노총 등 노동계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당장 내년부터 '시급 1만원 시대'를 열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대전 둔산동 아파트처럼 자동화시스템을 도입해 근로자들 일자리를 빼앗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을'(乙)의 소득을 높여주겠다는 정책이 '을'의 일자리를 없애는 역설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대선 전이었던 지난 4월 서울대는 관악캠퍼스 25개 건물에 경비원 대신 CCTV와 센서 등을 포함한 무인 통합경비시스템을 도입하고 경비원 신규 채용을 중단했다.

서울대 측은 "상당수가 50대인 경비원을 해고하는 대신 정년퇴임으로 '자연감소'할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여론을 의식해 경비원 20여 명을 해고하지 않고 다른 업무를 맡겼으나 장기적으로 일자리 감소는 불가피하다.

자동화·무인화 바람은 경비 일자리만 침범하고 있는 게 아니다. 올해 초 국내 대표 도시락 프랜차이즈인 '한솥도시락'은 무인판매시스템을 처음 도입했다.

한솥도시락의 약 68평 규모(227㎡) 신촌연세로점에는 최근 무인판매기 2기를 도입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3기가 더 설치됐다. 이로 인해 예전 피크시간에 4~5명이 동원됐던 카운터 계산 업무는 현재 1~2명으로 줄었다. 한솥도시락 관계자는 "새 정부 들어 임금 상승 압력이 커진 상황에서 가맹점주 요청이 크다"며 "우리뿐 아니라 다른 업체들도 카운터 업무 정도는 이제 키오스크(무인판매기)로 대체하는 것이 대세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최저임금 상승의 피해가 사회적 약자에게 집중될 수 있다는 것은 학문적으로도 입증돼 있다.

이정민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최저임금이 1% 상승하면 고용은 주당 44시간 일자리 수 기준으로 약 0.14%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최저임금 인상의 부정적 고용 효과는 여성, 고졸 이하, 5∼29인 사업체 등 취약계층에서 크게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최저임금 인상은 인건비 상승을 가져와 일자리 축소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경비원 해고를 추진한 대전 둔산동 아파트 역시 인건비 상승에 큰 부담을 느낀 것으로 나타났다. 매일경제가 이 아파트 관리비 지출내역을 분석한 결과 공용 관리비가 2012년부터 4년간 약 54% 증가하는 동안 경비 비용은 무려 61.3% 늘어났다. 인건비가 상승하면서 관리비도 상승해 주민 민원이 커진 데다 새 정부 출범 이후 '최저시급 1만원' 공론화로 내년도 임금 상승 압박이 더 거세지자 결국 해고의 '칼'을 뽑아들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경비업계 구조를 봐도 고용인력이 줄어드는 추세는 뚜렷하다. 최근 경찰은 시설경비업체 허가 시 경비인력 기준을 기존 20명에서 5명으로 완화하는 내용의 경비업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 현재 전체 경비업체 중 66%가 배치 인력을 10명 미만으로 운영하고 있다. 이런 현실에 맞춰 인력 5명만 갖춰도 시설경비업을 차릴 수 있도록 허가해주기 위해서다.

특히 프랜차이즈업계에선 새 정부 출범 후 급격한 임금 상승 우려에 무인 시스템화와 인력 감축이 대세로 자리 잡고 있다.

맥도날드는 현재 무인 주문 시스템 '키오스크'를 총 184개 매장에서 운영하고 있다. 작년 6월엔 키오스크가 도입된 매장이 52개에 불과했으나 1년 만에 3.5배가 늘어났다. 올해 안에 전체 매장의 56%에 달하는 250개 매장에 키오스크를 도입한다는 게 맥도날드 측 입장이다.

미국 맥도널드 전 최고경영자(CEO)인 에드 렌시는 작년 미국에서 시간당 7.25달러(2016년 기준) 수준의 시급을 15달러로 인상하라는 압박이 커지자 "시급 15달러를 주느니 3만5000달러짜리 로봇팔을 사는 게 싸다"며 맞서기도 했다. 실제 맥도날드 경쟁 브랜드인 버거킹은 햄버거 제조 과정 자동화를 위한 준비에 착수했다.

롯데리아도 2014년부터 키오스크를 도입해 2015년엔 78개점, 2016년엔 349개점으로 대폭 늘려 나갔다. 지난 5월 기준으로 전체 1350개 매장의 약 30%에 달하는 555여 개 매장에서 키오스크 주문을 받고 있다. 버거킹 역시 현재 100개 매장에서 셀프 주문 시스템을 운영 중이다.

대학생 아르바이트생 일자리 '1번지' 격인 편의점 역시 예외는 아니다. 세븐일레븐은 최근 잠실 롯데월드타워에 최첨단 편의점 '세븐일레븐 시그니처'를 오픈했다. 이곳에는 롯데정보통신이 개발한 무인 계산대가 놓여 있다. 컨베이어 벨트에 물품을 올려놓기만 하면 상품 바코드 위치와 상관없이 신용카드 결제가 이뤄진다. 이마트 편의점 위드미도 지난 3월 스타필드 코엑스에 처음으로 셀프 계산대를 시범적으로 설치했다.

[임형준 기자 / 이희수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go to top